이미 전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감이 되는 제목이다.

 

 뭐가 그렇게 안 맞았을까... 왜 나는 퇴사를 할까...

 

 

 

 

 

 사람

 

 익히 들어보았을테지만 회사 생활에 있어 이런 말이 있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이다.'

 

 물론 나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설비 유지보수에 대한 자료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형식지'를 통해 배우는 직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사람으로부터의 '암묵지'로 업무 대부분을 배우게 된다. 갑작스럽게 생겨난 문제를 짧은 시간내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저년차의 경우 신속히 선임자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근데 당신의 선임자가 물어볼 때마다 간헐적으로 한숨을 쉬고 귀찮은 듯이 말하면 어떻겠는가? 하... 글쓰는 지금도 답답하다. 말로는 소통 좀 하면서 업무하라고 하면서 막상 소통하려고 물어보면 '그런 것도 물어보냐? 하...', '대졸이 이것도 몰라?'라는 태도가 물씬 느껴진다. 구질구질해서 내가 겪은 예시들은 못 적겠다.

 

 어쨋든... 이런 태도는 문제가 생겼을 때 결국엔 꾸역꾸역 혼자 판단하게 만들어버렸다.(물론 아주 작은 상황들에 한해서이다. 큰 문제에서 발생한 실수는 대형 사고를 유발하기에 물어볼 수 밖에 없다. 근데 물어보면 안 가르쳐 주고 그냥 본인이 해버리더라^^. 일은 정말 잘하는 사람인데... 후배 양성에는 쥐약인 사람같다. 그럴 의무는 없지만...) 혼자만의 판단은 작은 실수로 이어졌고, 멍청한 놈으로 연이어 낙인 찍히며 제대로 업무를 배우지 못하는 상황이 악순환되었다. 나도 처음엔 정말 열심히 열정있게 물어봤다. 일찍 출근하여 알아보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결국엔 나를 딱 기본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냐고? 이건 주저리주저리 쓰기엔 너무 구차하기 때문에 길게 쓰진 않겠지만 결국엔 교대 근무 특성 상 '그 시간대에 가장 적절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다른 사람도 모른다'라고 하겠다.

 

 사람이 퇴사의 주 원인처럼 적었지만, 그건 아니다. 큰 원인은 맞지만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서 이동이 아니라 퇴사를 선택했기도 하다. 근데 어쩌면 나 자신이 자존심을 세우는 중일 수도 있다. '겨우 사람 때문에 퇴사를 한다고? 어딜 가든 그래 임마!'라는 말에 수긍해 패배자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야간 근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빨리 자진 않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나로서는(규칙적으로 생활하진 않지만 그런 생활에 동경심이 있다) 새벽에 깨어 있고 아침에 잔다는 것이 나를 상당히 괴롭혔다. 몇 년 해보지도 않았지만 건강도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실제로 느꼈다.

 

 나로서는 그랬다는 거다. 터놓고 말해서 나의 생각으론 이해가 되지 않으나 야간 근무는 상관없다, 오히려 좋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많다라고는 안하겠다. 대부분의 교대 인원들에게 야간 근무를 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할거냐?라고 물어보면 10의 9는 안하겠다고 한다)

 

 솔직히 알지 않았느냐, 교대 근무하는 것을?

 

 그렇다. 설비 엔지니어를 지원하는 것은, 혹은 장비사 CS 엔지니어를 희망한다는 것은 교대 근무에 몸 담겠다는 암묵적인 동의이다. 요즘처럼 현직자의 삶을 잘 알 수 있는 시대에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를 안 찾아봤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그렇기에 나도 당연히 알았다.

 

 실패다. 단호히 말해서 교대 근무를 해본 경험은 나에게 실패이다. 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보고 입 속에 집어 넣어 혀를 돌려 음미해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교대를 희망하진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지독히 피하고 싶었지만 '반도체', '삼성'이라는 단어에 속아 '교대 정도는 괜찮아!'라고 세뇌시켜가며 가장 쉽게 취업할 수 있는 설비 엔지니어를 골랐던 것이다.

 

 부수적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특근이나 방진복, 라인 근무 정도가 있겠다. 이틀 연이서 쉴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1번, 길면 2달에 1번 정도 였다. 그리고 방진복이 나의 감각을 다 죽여버렸다. 헤헷! 조금 개성 있게, 나에게 맞게 옷을 나름 잘 입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감각이 다 죽어버렸다! 출근하면 6 ~ 7시간 방진복을 입고 있고, 나오면 땀에 조금 젖어 편한 옷을 결국엔 찾게 된다. 또한, 업무가 라인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다보니 뭐라 해야 될까? 시야가 좁아지고 협력하는 범위가 좁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한된 사람만 만나 일했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며 상호 반응하고 이해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분을 느끼기 어려운 메신저로 대부분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어요. ㅎㅎ'라고, 마치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다는 듯이 말하는 클리셰같아 이런 말을 하긴 싫지만(싫은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몸이 거부를 한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장점도 존재한다.

 

 

 

 1년 밖에 근무를 안했는데도 다른 회사를 다녔을 경우 단 한푼도 안쓰고 모은 정도의 자금이 모였다. 신입사원에게 이정도로 퍼붓는 것은 이 업계가 얼마나 돈을 잘버는지 보여주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메모리로부터 대부분의 영업 이익이 발생하겠지만!

 

 요즘 이천/청주에 위치한 다른 반도체 기업과 총 소득이 얼마냐는 대결이 한창인데, 그 기업보다 적게 받았을 지라도 나로서는 지금 모은 돈도 감지덕지로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1년간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하기에는 적절한 돈이지 않을까 싶다.

 

 사람

 

 사실 위에서 말한 사람 문제는 단 1... 2명? 정도로부터 피어나는 불편함이었다.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뜻한 말을 건내주는 분들도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성취감

 

 원리를 알고 난 후 적절한 해결 방안을 통해 문제를 처리했을 때 성취감은 분명 존재한다. 생각대로 흘러가고 하드웨어적인 지식을 적용해서 문제를 풀면 재밌기도 하다. 문제가 해결되고 움직이는 설비를 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여기서 생겨난 자신감으로 CS분들이든 설비엔지니어든 업무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단점은 나를 떠나게 만들었을 수 있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반면, 장점은 나를 머물게 만들었을 수 있지만 끌리진 않았다.

 

 그냥 복합적인 상황에서 결국엔 더 먼 미래를 보았다. 사람이 문제라도, 근무 환경이 척박해도 이겨내고 배우고 싶은 분야가 무엇일까. 장점에만 눈이 멀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분야는 무엇일까.

 

 고심 끝에 단순하지만, 결국엔 나라는 인간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코딩을 선택했고... 어쩌면 요즘 코딩이 유행이고 유망하고 취업하기 쉽기 때문에 선택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근데 현재 내가 느끼기엔 이게 가장 나한테 맞다고 생각했다.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1년 뒤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상상이 전혀 안된다. 그래도 나는 똥된찍이다. 해보고 싶은 것은 그냥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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