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엔지니어에 관한 컨텐츠로 가장 먼저 다룰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곤 얼마 전까지 해보았던 5개월 간의 셋업 업무가 기억에서 흐릿해지기 전에 얼른 적어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혹여나 '얼마 근무해보지도 않은 놈이 글을 쓰네?'라는 분이 있다면 그냥 욕 한번 날려주고 귀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

 

출처 : Applied Materials

 

Set-Up : (기계 등의) 구성, 장치, 설치, 설정

말 그대로 반도체 설비를 제 자리에서 가동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것이다.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나면 어떤 기술팀으로(설비엔지니어로서는 어느 공정으로 갈 것인지라고 보면 된다) 가고 싶은지 결정되는 면담이 진행된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소위 말해 꿀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기술팀의 경우는 눈치 게임이 시작된다. 'T/O도 적은데 내가 될까?', '못 먹는 감, 먹어나 볼까!'

 

나 같은 경우엔 셋업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떤 업무를 하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을거라 생각했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

 

면담에서 이러한 것을 어필해, 대부분이 가기 싫어하는 평택으로 발령이 났다^.^ 평택으로 발령이 날 경우 다시 어느 기술팀으로 가고 싶은지 면담을 거친다. 이 때는 내가 가고 싶은 기술팀으로 배정이 되었다.(면접부터 일관되게 어필한 것이 도움이 되었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꿀인 곳에 지원 안해본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된다. '여기 아니면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배수의 진이라도 쳤어야 됐나...

 

출처 : WECO

 

 

셋업 업무를 해보기 직전까지는,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장비나 부품을 설치하거나 장착하는 줄 알았다. '마! 내가 거 다 했어 임마! 전기도 연결하고! 장비도 옮기고! 나사 다 박고 임마!'라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거라 예상하면서 ㅎㅎㅎ 너무나도 멍청했다.

 

설비엔지니어가 직접 실질적으로 설치하는 거~~~~~~~의 없었다. 이해는 한다. 당연히 장비에 대해 더 잘 아는 장비사가 설치하는 것이 확실하고, 혹여나 설치가 잘못되어 귀책을 따질 때 당연한 처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관이나 전기 같은 경우는 숙련자가 아니면 많이 위험해 협력업체분들이 도맡아 한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보기만 하는 것보단 무엇이든 해봐야 깊이를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주구장창 '이거는 왜 하는 거에요?, 왜 그걸 해요? 이건 언제 하는 거에요?' 등 질문만 해댔다. 장비사 엔지니어분, 협력사 형님들 나때매 많이 귀찮았을 거다.

 

그렇다면 무엇을 했는가! 설비가 들어올 자리의 밑바탕 작업이나 가스나 전기 배관 설치의 현장과 앞으로의 일정 등을 확인해 겹치지 않게 조율한다던가 환경안전 관련 인증 업무, 부수적인 작업에 대한 업체 Arrange, 셋업 보고서 작성 등 말 그대로 관리자의 업무를 하게 된다. 진짜 설치는 못하면서 관리자라니... 조금 허탈했다. 관리하는 업무라지만 8시까지 출근해 7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등 잔업은 거의 일상이었고 1달에 2번 정도는 주말에 출근하는 특근도 있었다. 납기 또한 촉박했기 때문에 1가지 일이라도 틀어지면 예민해질 때도 있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가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론 즐거웠던 것 같다. 교대 근무를 돌아보니 나한텐 셋업 업무가 그리울 때가 많다... 야근은 잦았지만 동료분들과 농담도 하며 일했고 끈끈함이 있었다. 주간에 일하니 그래도 회사다니는 느낌이 들었고 약속 잡기에도 비교적 수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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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n;;;

어렸을 적 집 컴퓨터로 게임을 하다보면 블루스크린이 뜬 경험은 모두 있을 터이다. 정말 난감하다. 3대3 헌터를 하다가, 영혼을 담은 한타 중 기괴한 소음과 함께 시퍼런 화면이 뜨는 것을 보면... 바로 후다닥 피시방으로 뛰어간 적도 있다.

 

요즘에는 블루스크린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뭐가 업데이트 돼고 발달했길래 그런걸까? 예전엔 피시방에서도 자리 잘못 잡으면 블루스크린이 떠서 500원 날렸다는 생각에 정말 속상하곤 했었는데...(1시간에 500원인 아주 저렴한 피시방이 있었다)

 

Serious

절망감을 느끼고 있던 어린 나에게 항상 구원의 손길을 줬던 사람은 아버지의 지인, 컴퓨터 AS기사셨다. 

 

"아빠! 또 블루스크린 떴다..."

"맞나? 기다리 봐라"

 

AS기사분이 오시면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고쳐져 있었다. 포맷을 다시 하거나 메인보드를 아예 교체하셨었는데 그게 나의 눈에는 하드웨어도 다룰 줄 알고 소프트웨어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보였었다.

 

'저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AS기사분이 고치고 가시면 항상 들었던 생각이다 ㅎㅎㅎ. 하지만 이상하게 컴퓨터 자체를 바꿔도 AS기사분이 수리를 해주셔도 6개월에서 1년마다 블루스크린이 나에게 찾아왔다. 정말 화가 나기도 하고 절망감도 느꼈는데, 그 때쯤 되면 악에 받쳐 주먹을 날려보기도 했다. 물론 고쳐지진 않지만...

 

'뭐가 대체 문젠데!'

 

정말 짜증나서 그냥 내가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 컴퓨터를 통해서 '블루스크린 고치는 방법'이라고 검색하고 에러 코드도 막 찾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AS기사님처럼 간단히 고치진 못했다. 하루를 뚝딱 날린 적도 있던 것 같다.

 

Engineer

 

능수능란했던 AS기사님의 모습을 자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해서 어렸을 때부터 엔지니어의 꿈을 가져었던 것 같다. 누군가 못 고쳐서 끙끙 대고 있을 때 내가 고쳐주고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얼마나 멋있을까!

 

이러한 작은 바람이 어느 정도 나의 진로에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과를 선택하고, 전기공학과로 입학하여 설비엔지니어로 취업하는 등등...

 

그렇게 4학년이 되어 취준을 하게 되었을 땐 가장 유망한 반도체 산업을 원했고 국내 1위인 삼성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설비엔지니어로 일하면 사무실에 있기도 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면 몸도 근질근질하진 않을거란 생각도 했다.(들어와서 보니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현장에서 보낸다)

 

막상 일해보니 내가 원하던, 어쩌면 '나중에는 괜찮아지겠지'라며 잠시 외면했던 것들이 여기엔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멋 따윈 다 죽고 원활한 의사소통은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와 교대근무로 인한 패턴 붕괴. 단점도 많지만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많다고 하진 않겠다.

 

그래도 최고의 장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았다는 사실과 함께, 꼭 바뀌어야 겠다는 간절함이다.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변화를 직시하며 점차 성취감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블로그를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드는데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편하게 내뱉고 가볍게 얘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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